본문 바로가기
영화.드라마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영화 , 유대인의 슬픔

by 아나이스의 별 2022. 4. 7.
반응형

줄무늬파자마입은 두소년사진
줄무늬파자마를입은소년

세계 역사의 아픈 기억 유대인들의 죽음

 

영화는 아일랜드 작가 존 보인(John Boyne)의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의 원작이다. 1시간이 안 되는 94분 영화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영화이면서 유대인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시대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현실보다는 조금 잔인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간에서는 유대인의 고통에 지겨운 홍보라는 차가운 반응도 있었던 영화이지만 아우슈비츠의 대한 설정에 오류가 많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추천할 만한 영화이다.

 

세계 역사의 슬픈 기억인 2차 세계대전인 한창이었던 194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8살 독일 소년 브루노가 살고 있는 베를린의 대저택의 부잣집 도련님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유능한 장교인 아버지 랄프와 함께 사는 모든 가족들은 아버지가 승진과 동시에 유대인 수용소 관리직으로 임명이 되면서 가족들이 모두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 옆에 위치한 집으로 이사를 가서 살기 시작한다.  줄무늬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만나게 되는 첫번째 시작의 알림이다. 랄프의 새로운 승진과 수용소장 부임에 대해 그의 아버지는 매우 만족해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승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들이 수용소로 가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대에 불구하고 랄프는 나라를 위하여 주어진 임무를 위해서 꼭 가야 한다며 어머니를 설득하고 아들 브루노와 랄프의 모든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가 있는 폴란드로 이사를 가게 된다. 

 

폴란드 수용소 아우 슈츠 비치에서 만난 소년

폴란드의 수용소 옆에 지어진 집은 아늑한 곳이 아니며, 마을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대인의 슬픔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노동수용소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특히 8살 아들 부르노의 방 2층에서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유대인들이 잘 보였다. 그러나 8살 소년 부르노는 그들을 농장의 농부들로 생각했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상상을 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수용소 소장 랄프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제재하였다.   

 

부르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이 궁금하였다. 수용소 근처에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도 없는 형편이기에 부르노는 그곳에 가면 친구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면서 용기를 낸다. 뿐만 아니라, 학교도 갈 수 없는 환경이라 가정교사가 찾아와 수업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부르노는 가정교사의 수업을 마치고 놀다가 호기심으로 뒷문을 열고 뒷동산으로 향하여 그곳에서 수용소 끝에 앉아 혼자 쉬고 있는 유대인 소년 슈무엘과 만나게 되면서 이들은 친구가 된다. 

유대인 슈무엘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했다. 수용소에 있지만 만날 수가 없다는 말에 브루노는 그의 아버지를 찾는 최적의 방법은 자신이 죄 수목을 입고 슈무엘의 아버지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판다 하였다. 

 

부르노는 큰 샌드위치를 슈무엘의 아버지와 먹기 위해 수용소에 몰래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함께 줄무늬 파자마를 입게 된다. 이제부터 비극이 시작이 된다. 아니, 어쩌면 비극을 만든 이들이 감당할 몫일 수도 있다. 꼬마 부르노는 슈무엘과 함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용소 안을 들어가 찾기 시작했지만 주변 환경은 아이들이 적응하기 무서운 소리와 생명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공포를 느끼게 된다.  부르노는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이 가스실로 끌려가면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랄프는 뒤늦게 아들이 수용소로 진입했음을 알게 된 후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지만 이미 아이가 입던 옷은 유품이 되었다. 그옷은 줄무늬 파자마였다. 

 

유대인들을 향한 슬픔의 그림을 그린 현장에서 두 소년의 우정이 그려지면서 유대인의 슬픔을 된다. 부르노의 죽음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였다. 그러나 그곳엔 부르노의 죽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유대인의 죽음도 함께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입었던 줄무늬 파자마를 입었다는 사실은 결국 자신이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 것이다.  슬픈 메시지가 있는 영화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