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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쉰들러 리스트 영화, 스티븐스필버그 감독

by 아나이스의 별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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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탈출한사진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전쟁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리암 니슨

 

전쟁이라는 무서운 상황에서도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었다. 한국도 그러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선택할 때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개인 저을 좋아하는 실화의 인물 영화이면서 유태인 영화이면서 전쟁영화였다. 그리고 단연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감독의 영화를 나는 신뢰한다. 감독은 어느 날 ' 쉰들러의 방주'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기자 및 영화 평론가로부터 무려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은 영화이다.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면서 다시 한번 보게 되는 영화이다. 

 

독일 쉰들러의 전쟁위기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폴란드를 단 2주 만에 침공하여 도시를 점령한다. 이때 독일인 쉰들러라는 사람이 전쟁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만들어서 큰돈을 벌어볼 생각으로 폴란드의 한 도시로 들어오게 된다. 그는 남다른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똑똑한 머리와 뛰어난 언어능력과 영업능력도 발휘하여 나치에 있는 많은 장교들에게 호감을 사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치당 소속 있었던 쉰들러는 자신의 사업을 위하여 공장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사업을 찾아내기 위하여 나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당시 행정 담당을 하던 잇 자크 스턴과 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비용을 적게 들이기 위해 유대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쉰들러는 나치 수용소를 건설하는 동안 캠프에 있던 유대인을 이동하는 과정 중에 많은 유태인들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나치군을 피해 숨어있던 어린 여자 소녀를 보게 되었는데 그 꼬마 아이가 마차에 쌓여있는 시신들 위에 놓은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쉰들러는 독일군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용소 감옥 건설 감독이었던 애몬 괴트 크라쿠프에게 최대한 조심하면서 여전히 뇌물과 호화로운 선물로 자신의 사업을 위해 지속적인 후원을 받게 된다. 애몬 괴트는 유대인의 가정부였던 허쉬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발코니에서 보이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총을 쏘아댔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고 끝없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들러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머무르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가능한 이곳에서 많은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쉰들러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애몬 괴트에게 뇌물을 주면 두 번째 캠프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낸다.  이때 독일군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애몬 괴트는 수용소에 남은 유대인들은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쉰들러는 애몬 괴트에게 자신의 고향 근처에  브룬 니츠에 새로운 건설을 할 수 있도록 유태인 노동자를 데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허락을 요구했다. 

 

애몬 괴트는 허락은 했지만 그것에 대한 거액의 뇌물을 요구하였다. 쉰들러는 850명의 리스트를 만들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될뻔한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약 7개월 동안 자신의 재산의 상당한 부분을 나치 관리자들에게 뇌물로 주면서 살려내려고 노력했다. 쉰들러의 공장에서 일하는 유태인 노동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 군인들도 있었지만 쉰들러는 그들을 말리며 살인자가 아니라 남자로 가족의 품에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쉰들러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였기에 미국에 항복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쪽으로 향해 탈출하기를 준비했다. 노동자들은 쉰들러에게 유태인의 한 생명을 구한 것은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교훈이 새겨진 반지를 선물한다.  그러나 쉰들러는 더 많이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한다. 유태인들은 공장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소련 장교에 의해 해방되었다는 발표를 듣는다. 

 

무려 3시간가량의 흑백영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총알이 없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못 죽여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건넬 뇌물이 없어서, 한 사람을 더 못 살린 사람이 있다. 그는 오스카 쉰들러였다.  유태인들이 건넨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마주한 유태인에게 자신이 좀 더 낭비를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이 구했을 거라고 하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1천1명을 살렸다. 자신의 자동차와 가슴의 금배지를 보며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라며 후회하는 모습에서 눈물이 울컥했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통곡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눈시울이 적셔졌다. 마지막 장면에 유태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광야를 걸어오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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